이글루스 로그인


1년

까먹고 안썼는데
기억나서 계속씀

-패러다임의 전환. 근대화

에트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게임의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낭만기때의 로망과, 우승전에 대한 즐거움, 부스터에 대한 잔잔한 재미는 사라졌다. 누가 더 빠르게 누가 더 강하게 성장하냐에 따라서 자신의 위치가 달라졌다. 애초에 에트류 최적화 태크트리 이후에 구현되던 수많은 전략과 사기에 가까운 방법은 기존 유저들에게 경악을 안겨다 주었고 신규유저에게는 희망을 꾸준하게 하던 유저들에겐 경계와 절망을 동시에 안겨다 주면서 게임 자체의 분위기를 급 전환 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때 당시에 우승전을 지배했던 거대한 맹주, 아슷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최초의 기숙구현 그리고 노말기체의 극단적 사기성, 그 이상의 효과 그리고 가격대 성능비 최악이라는 기숙의 단점을 극복하고 화려하게 등장한 아슷의 겐신은 그때당시의 우승전에 공포 그 이상을 안겨다 주었다. 아슷 + 겐신 + 회복의 조합은 다른 유저들에게 하여끔 절망을 안겨다 주었고, 그나마 고고하게 싸우는 마지막 일반유저의 희망은 우승전 낭만기 시절 유일하게 생존했던 투덜이 그리고 그때당시 화려하게 전적을 올리면서 아슷과는 또다른 방향으로 게임을 진행했던 레미, 그리고 훗날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를 달면서 전성기때 극강의 위력을 발휘했던 클로소의 카오스였다. 그런 그 우승전에, 그리고 전체 게임의 밸런스와 판도에 최초로 데이터와 분석을 근거로한 소위 말하는 과학적 플레이를 하는 유저가 등장했다. 그게 바로 에트였다.


-데이터의 보급화, 태크트리의 최적화

최초의 아슷의 기숙작업은 너무 힘들고 말도 안되는 작업이였다. 남들이 따라 할 수가 없고 오직 자기 자신만 할 수 있는 작업.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기숙작업은 말도 안되는 현실이였고, 타인이 경외시하는 동경의 대상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승전에서의 그의 전적은 화려함 그 자체였고, 퍼팩트에 가까웠다.. 라고 볼 수 있었다. 사실 낭만기 이후에 생존이 아닌 퍼포먼스의 장이 되어버린 우승전에서 그의 모습은 정말로 퍼포먼스 그 자체였고,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두꺼웠다. 일반 라이트 노말 유저들은 눈을 질끈 감고 적파트너 전과 타케전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고, 무참하게 무너지는 투덜이의 모습은 결국 노말유저의 트라우마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른 유저가 우승전에 집권할때 슬쩍 노려볼려 하니 그들의 머릿속엔 지금도 지워지지 않은 끔찍한 저주의 낙인과도 같은 두 글자 '레미'라는 이름이 우승전에 어른거렸다. 그 상황에서, 에트류의 보급화는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였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데이터와 분석을 근거로 하는 과학적 플레이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건 자신과 주변지인들에게 한정된 플레이였다. 철저히 플레이를 숨기고 자신만의 최적화된 빌드를 짜고 태크트리를 탔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용히 등장한, 에트의 빌드는 여러번 말해도 부족하겠지만 노말, 그리고 라이트 유저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고 결국 패러다임의 전환을 안겨다 주었다. 우선 그 빌드를 보도록 하면, 예전 부터 이어져왔지만 명확하게 제시 되지 않았던 환시의 구슬[애칭인 쥐구슬로 편의상 적도록 하겠다]의 재발견을 시작으로 '이기기 위한 빌드'가 아니라 '강해지기 위한 빌드'를 짜기 시작했다. 패배전적은 미친듯이 올라가지만 쥐구슬로 인한 경험치 획득, 그리고 그걸로 이어지는 거대한 레벨업의 보상은 극단적인 강함을 안겨다 주었고, 사람들은 에트의 빌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약한 사람을 잡아서 자신의 승리를 데이터에 추가하기보단 실질적인 이득인 경험치의 추가에 모든걸 투자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쥐구슬에 의한 극단적 레벨업은 유저 자체에 대해서 강함을 안겨다 주고 그 위에 적당한 일정수준의 레벨업과 그 뒤에 적 파트너전 또는 타캐전올인으로 향하는 거대한 이익은 노말유저와 라이트 유저에게도 일정 수준의 죽돌이들과 견줄 수 있는 무기를 선사해주었고, 결정적으로 기숙작에 대한 최적화 빌드가 완성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초반에 쥐구슬로 얻는 패배와 보상받는 경험치 그리고 올스텟 179 셋팅 이후 레벨 90까지의 적파트너전 그리고 그때까지 마련된 돈으로 기체를 마련하고 시작되는 기숙작업. 끝까지 계속되는 쥐구슬 노가다.
 그렇다. 이것은 매우 재미 없는 반복의 연속이였다. 같은 방법만 꾸준히 하고 이기지도 않는 싸움, 하지만 그 보상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정말 인고 끝에 나온 보람은 유저들에게 정석을 포기하고 에트류 최적화 빌드에 흐름을 맡기기 시작했고, 게임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였다. 노말기체 오버커마 이후 자취를 감췄던 그들의 역습이 다시 한번 시작된 것이였다. 그들은 여태까지 레어와 시크릿 그리고 극단적으로 강한 유저들에게 치이고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였다. 일종의 족쇄에서 해방 된 것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 한 점은 에트가 만든 족쇄는 에트가 결국 체우고 말았다. 그들이 이룩한 패러다임은 결국 밸런스 붕괴론, 재미를 위한 게임이 아닌 게임을 위한 게임론, 더욱더 심해지는 노가다에 대한 회의감 등등.. 여러가지 부작용을 안겨다 주었고 그들 자신이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까지 강해져야 하나? 그 문제는 에트가 등장한 근대전 이후부터 제시 되었고 결국 미니미니가 구현한 안티 기숙이라고 할 수 있는 스폐셜의 등장까지 그들이 풀지 못한 또하나의 미스테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에트류의 극대화, 그리고 PAX인택

여튼 그들이 그들에게 모순을 제공하기 전, 자신들의 행동이 확실하다고 판단 했던 그 무렵 인택은 이미 건택과의 결별 노선 이후 앨범의 구현, 그리고 스폐셜이라는 아직은 꽤나 아득한 가장 강한 기체를 제시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저들의 믿음은 오만으로 이어지고 오만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앨작할바에야 기숙하는게 더 빠르고 현명하다. 안타깝게도 미니미니가 그 벽을 깨기전까지 그 패러다임은 여전히 돌기 시작했었고, 그것이 결국 정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쥐구슬의 남발과 근대화 이후 에트류 새대 라고 할 수 있는 유저들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새로운 새대의 주역들, 지금도 꽤나 알려진 마왕, 미뱀등이 이때 새대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때 에트류가 대중화 되고 당연히 이렇게 하는게 좋다고 알려지던 시절, 인택은 가장 평화로웠다. 말 그대로 PAX인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우승전은 아직도 건재한 아슷,카오스가 존재 했고 레미는 우승전에서 빠져나와서 돈을 모으는데 열중했다. 그렇게 우승전에 열을 낼 상황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에트, 마왕, 미뱀 등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근대화를 이끄는 차새대 주자였지만, 8월중순까진 그렇게 강한 유저들은 아니였다. 한 마디로 요악하자면... 극단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은 정말로 평화로운 두달 이였다. 7월 8월 아직까진 올드들이 건재하게 활약 할 수 있고, 새로운 유저들이 멋지게 활약 할 수 있던 시절... 시크릿, 레어, 노말이 사이좋게 지내던 시절 사실 그들은 그렇게까지 우승전에 신경쓸 필요도 없었고, 이렇다할 사고도 없었기 때문에 8월 중순까진 별 탈 없이 담담하게 하루하루가 지나갔었다. 이때당시 나름대로의 문화도 발달 하기 시작하여서, 강함과는 관련없는 기체 수집가 그리고 현대스트로 등등.. 한창 여러가지 방향으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생겼고, 네이버 블로그 등에 홍보되기 시작한 시점이였기 때문에 유저들이 대거 유입 되어서 여러가지 문화가 공존하던 아주 평화로운 나날이였다.


-3차 성전 발발 투덜이의 마지막 불꽃

8월 중순이 지나갔다. 평화뒤에는 전쟁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우승전 낭만기 시절부터 끝까지 이 판을 지켜왔고 이 판을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투덜이가 슬그머니 옛 유산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게 바로 성전이였다. 과거 아세리아 폭동사건으로 점칠된 사상 최악의 사건이자 사상 최악의 이벤트 성전을 꺼내 들면서 동방인민해방노선을 지지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제 3차 성전으로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영자에게 끝까지 대항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했던 한 유저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때당시 투덜이의 3차 성전 구호 제창 이후 다양한 유저들의 지원, 그리고 동방의 황금기와 스타일리스트의 마지막 불꽃, 우승전에서의 투덜이의 활약 등등..은 소위말하는 낭만기 시절 유저의 마지막 낭만이였으며, 그 낭만은 동방부스터 기체의 대폭 추가와 수많은 짤방 제작, 동인지패러디 등 으로 이어지면서 제 2의 동방부스터의 전성기로 이끌었다. 아이러니한건 그가 활동했던 낭만기시절 가장 강했던 부스터중 하나인 동방부스터가 지금에 와서 다시 그가 황금기로 이끌기 시작 한 것이였다. 30여개 남짓했던 부스터의 기체 수는 2배로 튀겨지기 시작했으며, 투덜이의 3차 성전 제창 이후 부스터들의 기존 기체 수가 몇배로 튀겨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뒤로 결과는 허무했다. 투덜이의 자금 올인, 운영자의 운영방향에 대한 고민 그리고 여전히 꿈틀거리는 에트류의 잔재는 끝까지 운영진의 발목을 붙잡았으며, 평화의 시절 이면에 꿈틀대던 그들의 모순과 잔재가 슬슬 표면이후로 나오면서 쥐구슬 개사기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뒤늦은 너프, 그리고 9월사태

사실 PAX인택은 겉으론 매우 평화로운 시절이였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매우 모순이 많은 시절이였다. 보고도 못본체 한듯이 행동한 운영자와 그걸 빌미로 더욱 극성을 부리는 에트류, 그리고 올드유저들의 아우성속에 담긴 우승전에서의 경악적 승률, 8월말 Elel등장 이후 그나마 해결책을 제시하긴 했지만 그것은 역부족이였다. 유저들은 스폐셜을 그냥 허구의 존재처럼 등한시 하였고, 올스텟 유저들은 Elel만 믿고가다가 후반에가서 좌절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호시노, 지져스 등 그때당시 활약하던 유저들이 슬슬 게임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중도 탈락을 하기 시작했다. 에트류의 극성이 결국 게임의 밸런스론으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투덜이의 불꽃은 투덜이 자신에 한정된 불꽃에 지나지 않았다. 에트가 정립해놓은 최적화 빌드는 노말 유저와 라이트 유저의 숨통을 트이게 했지만 그 결과 스타일리스트의 전멸, 그리고 양산형유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8월 유저들의 기형적 등장으로 PAX인택은 겉으로는 매우 평화로웠지만 쿼리, IRC내부, 게시판의 리플 등등.. 이면을 들여다 봤을땐 서서히 혼란스러워지겠다. 하는 감정이 자기도 모르게 들 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때당시 활약했던 사쿠라자키, 루데인 등... 그나마 스타일리스트를 유지했던 유저들도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고 결국 네이버 3대 유저중 하나인 사쿠라자키가 중도 하차를 하였다. 올드유저들 사이에서도 꽤나 분위기가 달라졌다. 호시노루리가 뉴페이스로 화려하게 떠올랐지만 Elel의 생각외 약진으로 결국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아슷과 카오스의 중도하차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레미와 이미 불꽃을 너무 태워서 재가되어버린 투덜이만 남은 상황. 피라는 예전에 사라졌고, 슬슬 새대교체라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실 전투쪽으로만 너무 치중한 이야기라서 그렇지 경제면으로 따지면 그때당시 대형 투자로 이득을 서서히 챙기는 서박사, 토키 같은 유저들도 나름대로 활약을 하고 있었다. 단지 문제는 전투면에서는 도움이 안 되었다는 점. 물론 경제쪽으로 즐기는 또다른 문화를 제공했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할 점이다. 아무튼 그렇게 올드의 몰락, 유일하게 건재한건 레미와 투덜이 서서히 치고 올라오는 에트, 마왕, 미뱀 그리고 8월이 끝났다. 그리고 여기에 언급은 안했지만, 많은 유저들이 활동했었다. PAX인택시절 언급은 안되었지만 많은 활약을 했던 유저로는 귀닥, 클뤼니,하야토,이브,이즈미,아오군,중독자,젠장툰 등... 여러모로 알게 모르게 여러명이 활동했었다. 단지 기억에 남는 패러다임을 제시한 유저가 아닐 뿐 그들도 그들대로 역사를 만들고 패러다임에 저항하거나 적응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무튼 8월로 대표되는 네이버 새대가 종막을 고하고 9월이 시작되었다.


-9월 사태

사실 9월 사태에 대해서 이야길 하자고하면 여러모로 할 말이 많아진다, 9월 사태가 일어난 배경을 살펴보면, 9월 초순 이후 시작된 초보자 배려패치, 그리고 밥상뒤집기로 대표되는 이글루스 유저의 대거 유입, 그리고 쥐구슬 너프 이후 기숙기체들의 정체성 고민등.. 여러가지 상황이 겹치던 시절이였다. 그 시절에 정말로 거대한.. 그리고 막대하다고 할 수 있는 이글루스라는 이름을 달고있던 거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리고 몇일뒤 제 1차 9월사태 제 2차 9월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게임은 겉잡을 수 없을정도로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PAX인택 시절 이면에 잠들었던 수맣은 불만들과 새로운 유저들에 대한 텃세와 적응 부피가 3배로 커진 인택에 대한 운영자의 혼란스러움등이 합쳐서 하나의 사고와 함께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거대한 백섭이 일어났었다.

 


 

by 태화전 | 2008/04/03 13:28 | 트랙백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phs2981.egloos.com/tb/182641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버섯군 at 2008/04/03 13:43
이게 다 끝나고나서 제가 시작한듯하군요
Commented by 돌리어스 at 2008/04/03 20:06
저도 아마 이글루스 유저 대거유입 시기 후에 뒤늦게 참가했었으니깐요
대규모 백섭이라... 음 그러고보면 제가 할때 당시 생각보다 순위권 분들이 "강하다"란 생각이 들진 않더군요. 그건 설마 백섭때문인건가요
Commented by lastwaltz at 2008/04/04 12:37
아아...그리운이야기 재미있게 잘 봤음.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