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05일
1년
-9월 사태 그리고 새대교체
사태는 꽤 심각했다. 운영진의 부재 이후 거대한 백섭, 1달전 세계로 되돌아온 유저들. 신규유저들의 공황상태. 그리고 그것은 여론의 설레발로 이어졌다. 사실 이 사건은 객관적으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일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운영진이 대처를 하기도 전에 엄청난 수의 블로그에 말도 안되는 양의 포스팅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그 포스팅은 게임 자체의 불안함으로 이어지고 존속 자체에 엄청난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긴 아무생각 없이 돌 하나 던졌는데 파동이 커져서 옆에 있던 거대한 산이 무너질뻔한 사건이였다. 총책임자의 부재속에서도 소스마스터의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다행이도 몇시간전 데이터 파일이 있었다. 그리고 복구를 했지만, 유저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너무 무난한 해결책이였다. 아직도 총 책임자는 부재중이였고 사태는 정말로 심각하게 흘러갔고, 운영진 내부속에 이글루스에 대한 분노감과 반발심은 거의 극대화에 이르렀고 결국 총책임자의 복귀 이후 분노를 최대한 잠재운 뒤 냉정하게 대응하고 제 빠른 복구와 여론 차단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날새면서 복구 작업에 이르렀고, 제 1차 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확실히 언급 하고 넘어갈점은 새대교체의 바람이 확실하게 불었다는 점이다. 기존유저와 신규유저의 운영진을 대하는 태도에서 부터 확실히 달랐고, 게임이 거대화되었다 라는 말을 부정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전까진 그나마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였지만 이제부턴 분명히 선을 긋기 시작하였고, 제 1차 파동 이후 2차 파동으로 이어지는 그 사이에 알게 모르게 유저들 사이에도 올드와 뉴비의 벽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게임 내적으로도 에트류의 극성을 잠재우기 위한 쥐구슬 너프 이후 초보자 배려패치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여 그 너프를 무시하고도 에트류를 쓰는 유저들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초보자 배려패치로 인한 에트류에 필적한 9월 새대의 양산유저가 엄청나게 쏟아져나왔고 그 숫자는 몇배나 되었다. 다시 알기 쉽게 압축하자면 에트류의 잔재와 초보자 패치 이후의 9월 새대 그리고 거대한 백섭으로 인한 1차 파동과 이어지는 2차 파동... 문제는 그 불만을 잠재우기 전에 중간층 의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초보자 패치로 인해서 너무 우리가 힘들다 라는 것이다. 어째서 400대 레벨의 유저들과 뉴비들이 돈 버는 액수가 같냐 라는 의견은 서서히 커지기 시작하였고 한 두명의 불만이 그 중수층 자체의 불만으로 이어져 결국 뉴비, 중수, 고수 간의 벽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불만은 극대화되기 시작하였다. irc, 게시판 등에서의 끝없는 논쟁과 고수들 조차의 분분한 의견 뉴비들의 투덜거림, 중수의 분노, 결국 의논끝에 총 책임자는 백기를 들기 시작했고, 초보자 배려패치를 너프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는데 의논을 하지 않고 총책임자의 독단적 의견으로 결정한 일이다보니 나중에 운영진 사이에서도 불협화음이 들렸고, 요컨데 난장판이였다. 이 난장판의 시작은 근대전 시작부터 이어졌고 결국 미니미니가 스폐셜을 뽑고 난 뒤 현대전의 시작 할 때 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벽
1차 백섭이 일어났다. 올드는 침착했다. 뉴비는 경악했다. 블로거들은 근거없는 포스팅을 개시했다. 총책임자는 분노했다. 침착했다. 절망했다. 기회로 삼았다. 2차 백섭이 일어났다. 올드는 태연했다. 뉴비도 태연했다. 여론은 차단되었다. 사건은 조기 진압이 되었다. 총책임자는 피곤했다. 초보자 너프가 시작되었다. 뉴비는 절규했다. 중수는 좋아했다. 고수는 그렇게 탐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총책임자는 고뇌했다. 알게모르게 벽이 생겼다. 골이 패였다.
-현대전 시작
에트류가 한풀 수그러들었나? 천만에, 아니였다. 여전히 그들은 에트류로 그들의 최적화 테크트리를 구현 하기 시작하였고, 이미 기숙작업은 쥐구슬 너프 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돈을 이용해서 무리를 해서라도 기숙작을 하였고, 강함의 극대화를 노렸다. 그리고 뉴비들은 동경했고 중수들은 따라했다. 우승전은 어느세 마왕의 무대가 되었고 슬그머니 8월 에트류 새대의 독무대가 되었다. 아슷은 이미 이판을 접었고, 오랫동안 고분 분투하는건 이제 투덜이 뿐이였다. 레미는 일찌감치 타케전으로 눈을 돌렸다. 결국 끝까지 그들은 에트류를 고집했고, 이것이 가장 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순간 묵묵히 몇달간 작업을 했던 마지막 스타일리스트가 있었다. 그 유저는 7월 앨범이 처음 오픈할때부터 자금을 근거리와 앨범에 투자 하기 시작했고 이미 10월초가 되었을 무렵 드디어 스폐셜을 완성했다. 본격적인 현대전의 시작을 울리는 신호탄이였다. 기숙작으로 점칠되고 뉴비들은 처다보지도 않던 퍼포먼스로 전락해버린 우승전 무대에 미니미니가 등장했다. 기숙작이 아닌 기체였다. 하지만 이겼다. 가볍게 이겼다. 스타일리스트의 반격이 시작 된 것이였다. 미니미니의 등장은 크게 몇가지 의의를 줬는데 기숙작을 안해도 다른 해결책을 제시 할 수 있다는 것이였고, 게임을 즐기면서도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이였다. 무리한 기숙작보다 앨범작업 이후 스폐셜을 갈아타서 싸울 수도 있고 여러가지 선택이 가능 하다는 점이였다. 그리고 에트류를 전면으로 부정했다. 꼭 그렇게 할 필요 도 없이 자기 꼴리는데로 해도 충분히 싸울 수 있고, 랭커가 된다는점에서 미니미니는 유저들에게 여러가지를 시사해줬다. 그리고 그것은 앨작이라는 개념에 엄청난 의의를 부여해주었고, 뉴비와 중수의 경우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게임에 대한 종속에서 꽤나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전용필드로 대표되는 방어기체의 무서움에서 스폐셜은 기숙케와 충분히 대등 아니 그 이상의 우위를 점하고 결정적으로 에트류가 해답이 아니라는걸 유저들에게 직접 보여준 뒤 그 강함을 마음껏 과시했다는 점에서 미니미니의 등장은 충격적이였고 그것은 곧 현대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by | 2008/04/05 04:43 | 잡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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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의 능력치에 대한 공개가 없어서이기도 했을겁니다
음 저는 이시기쯤에 들어왔었군요
들어와서 나도 초보자 배려 그걸로 돈좀 벌어보자 했더니 너프당해서 좌절한 기억이 [...
개인적으로는 이무리 지형대응을 좋게했다해도.
성공한 기숙(혹은 마력이나 체력 극대화)에 비하면 효과가 미비하다 생각함.
....뭐랄까 인택은 지형대응이라는 요소가 아직도 확실하게 정착이 안된것 같다는
느낌도 든단말이지.